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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실] 사격 국가대표의 ‘과녁’을 맞추는 게 꿈 입니다.

조회수
4,845
등록일
2012-05-14 17:14


이번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상장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소연 학생

“ 두 번의 사격 선수의 꿈 포기, 네일 아티스트를 배우며 다시 사격선수의 꿈 도전”

- 가냘픈 눈매로 ‘ 전국사격대회에서 준우승’ 과녁을 정조준 하다.
- 사격국가대표 태극마크 ‘과녁’을 맞추는 것이 인생의 두 번째 도전.
- 사격선수에서 네일아트로, 다시 대학생 사격선수로 ‘준우승’을 뚫다.
- 대경대 경호 보안과 김소연 학생 전국사격대회 ‘준우승’ 차지.
- 이제부터는 손님의 ‘손’이 아니라 권총의 손잡이만을 잡을 겁니다.

“ 네일아트를 하면서도 사격선수의 꿈을 포기하기 힘들었어요. 이제부터 사격 국가대표의 ‘과녁’을 맞추는 것이 인생에 두 번째 도전입니다.”

올해 27살의 늦은 나이로 대경대 사격특기생으로 대학생으로 입학한 김소연(27. 경호보안과.1) 학생이 지난, 2일부터 7일간 치러진 ‘대통령 실 경호처’가 주최한 제 8회 ‘경호처장기 전국사격대회’에서 대학생 여자부 사격부문에서 25M 권총으로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소연 학생돠 경호보안과 지도교수 김명영 교수가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50명이 출전한 결선에서는 200점 만점의 과녁을 뚫을 수 있도록 20발을 쏜다. 최종 결선을 하는 날에는 (198)점을 뚫고 1명에게 수여되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은 한국체대 소속에게로 돌아갔다.

“우승을 차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아요. 대경대에서 늦은 나이에 다시 권총을 잡고, 국가대표 사격선수의 꿈을 재도전 한다는 것이 기쁩니다.”

중학교시절부터 사격선수의 발을 들여놓은 그는,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 단체상과 개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사격선수의 재능이 있었다. 고교를 졸업하고는 대구 남구청 실업팀에서 4년동안 활동했다. 10점 과녁을 뚫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각만큼 기량이 오르지 않았다. 국가대표 사격선로 선발되는 것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23살 때 실업팀을 나왔다. 그리고는 네일아트를 배웠다. 2년 동안 네일아트 숍 에서 권총 손잡이가 아니라 손님의 손을 잡았다.

네일아트를 배우면서도 국가대표 사격선수의 꿈을 놓지 않았다. 25M 권총을 들고 다시 사격연습장을 찾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사격 국가대표 유니폼 입은 꿈은 멀어져 갔다.


사격을 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소연 학생

네일 아트가 손에 익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을 때 박제식 교수(대경대 경호보안과)가 ‘ 대학팀에서 사격선수의 꿈을 다시 시작하자고 수 십 차례 찾아와 용기를 줬다. 넌, 반드시 해 낼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대경대학에서 다시 권총을 잡게 만들었다.

대경대학에 들어와 다시 권총을 잡으면서도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어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이를 꽉물고 하루에 수백 발을 쏘면서 연습실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제 몸이 겨우 사격선수의 체질로 돌아왔어요.”

이렇게 다시 시작한 국가대표를 향한 그녀의 특별한 이력이,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화제가 됐다. “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으로 다시 출발한 새로운 인생이지만 언젠가는 국가대표 사격선수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전, 과녁을 향해 25M 권총을 쏩니다.”

키 171M에 가냘픈 체구를 한 김 소연이 대구 실내사격 연습장에 들어섰다. (27. 대경대 경호보안과 1) 사격 전문화를 신고, 안경을 착용했다.

1.8kg이 나가는 25M 화약권총을 들었다. 권총의 손잡이를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움켜진 오른손 바닥 엄지 손 가락 쪽은 작은 봉오리 모양이 군살로 채워졌다. 권총에 화약탄피 5발을 장전한 그는 투명안경을 치켜 올렸다.


준 우승을 하지한 25M 권총으로 과녁을 향해 집중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탄피 보다 빠른 속도로 안경알을 뚫고 나왔다. 표적지 과녁과 그의 시선이 수평을 이루었다. 25M 화학 권총이 그의 시선으로 천천히 올려졌다. 짧게 내쉬는 숨소리도 소음이 된다. 그의 손등이 움찔거린다.

표정은 얼음조각이 됐고, 온 몸의 신경세포는 과녁에 집중된다.

5발의 22구경 탄피는 총구에 하얀 거품을 내며 표적지를 뚫었다. 1초 동안에 벌어졌다. 권총을 내려놓은 그녀는 종이표적지를 끌어 댕겼다. 10점 만점을 알리는 종이표적 과녁은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표적지에 박혀 있는 검정색 숫자표시는 흔적도 없이 허옇게 사라졌다.

매일 이곳에서 25M 권총과 사투를 벌인다. 하루 그녀가 쏘는 22구경 탄피는 300발이다. 300발로 과녁을 뚫고 지나가는 시간은 3시간 정도가 걸린다. 300발을 다 쏘고 나면 집중한 에너지가 몸 밖으로 빠져 나와 긴 숨을 한 번에 몰아서 쉰다.

손바닥은 끈적끈적한 땀이 차지한다. “ 힘들어도 참아야죠. 평생 잡아오고 있는 25M 권총으로 국가대표 선발 과녁을 맞힐 때 까지 멈출 수 없죠.”

중학교(서진중학교 사격클럽) 1학년 때 부터 시작한 대한민국 사격선수의 꿈은 올해로 13년째다. 국가대표 자리는 쉽게 내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체전 단체상도 수상하고, 19세 때는 개인상인 은메달도 손에 쥐었다. 권총을 들고 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다.

권총으로 과녁을 수 만 번 향할 때마다 사격 국가대표 선수의 꿈이 탄피의 속도처럼 빨라 질것이라고 믿었다. 한두 번 찾아온 국가대표선수의 기회도 마음처럼 과녁을 뚫지는 못했다.

졸업한 후에는 대구 남구청 실업사격 팀에서 4년 동안 활동했다. 성적이 오르지 않자 사격선수의 꿈을 아예 포기했다. 권총 손잡이만을 만져온 그녀가 사격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네일아트를 하러 찾아오는 손님들 손을 2년 동안 잡았다.

어머니 홍현순 (49)씨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해보라”고 네일 아티스트의 도전에 용기를 주었다. 사격선수를 다시 시작하면 고생만 시키는 것 같아, 네일아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표현은 못해도 자식이 연습장에서 권총을 내려놓는 다고 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

“ 더 이상은 사격선수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국가대표의 꿈도 멀어지는 것 같아서 네일아트를 배웠는데, 말없이 기다려 주신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

그녀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박제식 교수( 48.대경대 경호보안과 교수)는 네일아트를 배우던 그녀를 설득했다. “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해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사격선수로 재능이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어요. 한 달 동안 선수를 다시 하라고 매달렸습니다. 담력과 집중력은 이미 사격국가대표 선수입니다.”

올해 신입생으로 대경대학 경호보안과에 늦은 나이에 입학한 그녀는 다시 사격국가대표 선수의 과녁을 정조준 하고 있다.

“ 사격선수로 제 인생이 좀 기구한 편이죠. 하지만 대한민국 사격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서 세계 곳곳에 제 권총의 총성이 울려지는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오석훈 교수( 경호보안과 학과장) 는 “앞으로 대경대학 사격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 수 있도록 학과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 ”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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