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크기
  • 보내기
    URL

그의 손길이 패션과 모델을 만든다 (상)

조회수
2,696
등록일
2008-06-25 14:25

070522_naver.gif


그의 손길이 패션과 모델을 만든다

<김건표의 행복초대석>패션모델 쇼 전문연출가 신상원 교수
"패션쇼 무대는 창의적인 공간...무엇보다 무대디자인이 중요"

080625_naver.jpg
◇ 패션모델 쇼 전문연출가 신상원 대경대 모델학과 교수, 그는 500여회가 넘는 패션쇼를 연출했고 제자들은 그를 위해 600회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 데일리안

신상원 교수(43 대경대학 모델과), 패션모델 쇼 전문연출가다. 그의 직함만으로는 활동 폭을 가늠하기 어렵고 생소하게 들린다.

그는 대구경북에 패션쇼가 전무하던 시절, 20년 동안 전문 모델들과 패션쇼 연출자로서 자리를 지켜 냈다. 연출한 패션쇼만 해도 500여회가 넘는다. 그와 함께 한 모델들은 수천 명에 이른다. 제자들은 스승의 마음을 이어 가자고 600회 패션쇼를 준비했다. 공연 횟수로 치면 그도 환갑(還甲)을 맞는 셈이고 제자들은 수연(晬宴)식을 여는 것이나 같다.

T 자형 패션모델 쇼 연습 무대, 이곳은 신 교수의 600회 패션쇼가 열리는 공연장이다.

터질 듯 한 음악소리가 모델들의 움직임과 시선을 이끈다. 음악의 리듬이 모델들 움직임에 악보가 된다. 170cm 키에 이목구비가 반듯한 20여명의 남녀 모델들이 퇴장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시간은 불과 20초 이내. 마술과 같다. 모델들의 등장과 퇴장이 마치 속도 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생김새가 다른 만큼, 움직임도 다르고 표정도 다르다. 앞면 대형 거울은 자신만 느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친구가 돼 준다. 천장에 매달린 수 십 여개의 조명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신 교수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그의 눈빛 방향과 손짓을 따라 모델들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사인을 주고받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연기자는 감정을 통해 등장인물을 표현해 내야하지만 모델들은 그날 입은 의상을 가장 화려하게 표현해 내야한다. 모델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음악리듬에 따라 변하고 감정에는 집중되지 않는다. 무대중앙으로 남녀 모델들이 섞이고 흩어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앙상블을 이뤄 낸다. 모델을 향하는 그의 소리가 음악소리를 넘어선다.

“시선을 더 고정시키고 몸을 더 세워서 움직여봐”, “의상이 더 돋보이게 움직임을 멈추고 포즈를 잡아”, “퇴장하자마자 다른 의상을 준비해야지”, “움직임에 개성을 살리고 관객들이 의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연출자 소리 크기에 따라 모델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변한다. 모델 한명이 무대아래 객석으로 내려와 한 번에 생수한통을 다 비운다. 음악 소리가 줄어들고 조명이 꺼진다.

모델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표현해내야 하는 직업
배출해낸 모델만 500명 넘어

대구가 섬유, 패션도시로 중심에 서 있을 때, 신 교수는 다양한 패션쇼를 연출하면서 대구를 알렸고 디자이너들의 패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는 연출능력으로 패션쇼의 흐름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외 패션쇼 연출을 하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그가 주도했고, 배출해낸 모델들만도 500여명에 이른다. 한국모델협회에 등록돼 활동 중인 모델들이 5000여명인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손을 거쳐 간 모델들의 숫자는 적지 않다. 이중에는 미스코리아도 있고, 슈퍼모델들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080625_naver2.jpg
◇ ⓒ 데일리안

“교수님은 대구시와 공동으로 패션뷰티체험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관광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대구는 관광도시가 돼야 합니다. 인프라가 굉장히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대구하면 패션과 미인을 떠올립니다. 도시의 이미지의 맞는 모델들의 활동을 체험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모델들의 개성(個性)과 미(美)의 선택기준으로만 문화적 상품화를 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참여와 체험을 통해 모델 활동의 모든 프로그램들을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신 교수는 강조했다.

지금까지 패션뷰티 체험을 이용한 외국인 관광객만 해도 1200명이 넘어 섰고, 내국인도 600명이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1년이 넘어섰지만 당분간 예약은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델체험 프로그램은 우리고유의 전통문화를 접목하고 현대적 감각을 응용한다. 체험이 있는 날이면 휴대전화부터 카메라, 캠코더 등으로 기록을 남기려는 사람이 많아 문화상품이 되고 만다. 관광객은 참여해서 즐겁고 모델들은 표현해서 즐겁다.

패션쇼 연출이 당당하게 직업이 될 수 있도록 그가 해낸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방송 PD를 꿈꾸던 청년시절, 우연한 기회에 이광희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고나서 연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밑바닥 생활부터 출발했다. 당시의 추억은 그에게 스승이 돼 있는지 입을 여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분(이광희 디자이너) 쇼를 보면서 큰 자극을 받았어요. 연극, 영화, 드라마라는 장르도 있었지만 패션쇼도 충분하게 종합예술로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공무원이나 방송 PD가 되길 바라셨던 부모님을 설득하는게 정말 힘들었죠. 패션쇼는 디자이너의 의상을 표현해야합니다. 연출을 하고 싶다니까 모델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해요. 그렇다면 모델들이 있는 세계로 가보자고 결심을 한 겁니다.”

그는 결국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모델라인 공채 1기로 들어가 기획연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생의 연속이었다.
모델에게 밥을 날라다 주는 일부터 온갖 허드렛일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모델들이 올라선 무대에 천을 깔고 뜯고, 부수고를 수백 번 반복했다. 객지 생활이 쉽지 만은 않았다. 손은 트고 마음은 갈라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인생의 무게는 고단함으로 밀려왔지만 그는 20년 앞을 내다보고 속으로 울었다.

“쇼가 끝나면 모델들이 신었던 힐 자국이 무대에 그대로 남습니다. 분필로 그 자국을 닦는 일을 했어요. 밑바닥 생활이 저한테는 굉장한 도움이 됐지만 마음속으로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멀쩡하게 양복을 입고서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후회도 됐습니다. 후회는 했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어요. 일에 대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성취감으로 마음을 달래고 도전정신으로 버텼습니다.”

3년 타향살이 끝내고 고향 대구에서 홀로서기 시작
보수적인 대구에서 모델들이 상품화되는 것 싫었다.

080625_naver3.jpg
◇ ⓒ 데일리안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모든 것을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패션쇼의 특성상, 수 천 가지의 새로움으로 표현될 수 있는 패션쇼 무대에 그는 흠뻑 젖었고 그 색다름을 찾기 위한 연출가의 도전정신으로 그는 20년의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패션쇼에서 무대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시절에 배웠습니다. 늘 같은 것은 없으니까요. 그 표현방법을 찾는 것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패션쇼의 연출능력은 디자이너의 의도에 맞게 표현해 내는 연출능력이 중요합니다.”

모델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주무기로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고서 움직임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해 낸다. 그는 이 시절 닥치는 대로 다른 패션쇼를 보러 다녔고 지춘희, 이상봉 디자이너 쇼를 곁에서 보면서 그는 연출적 감각을 길러 나갔다.

“이상봉 선생님의 쇼는 상당히 실험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실험성 안에 미국의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매킨의 쇼처럼 항상 퍼포먼스와 이벤트를 통해 무대를 신선하게 만드셨어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무대였습니다.”

그는 3년 동안의 객지 생활을 마치고 고향 대구로 돌아온다. 홀로서기의 시작인 것이다.

“당시 패션·섬유 산업으로 대구가 중심에 있는데 모델분야 만큼은 낙후돼 있는 게 정말 안타까웠어요. 디자이너들이 창작한 의상들은 대중적인 소비심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모델들의 활동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대구가 좀 보수적이잖아요. 모델들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일상생활에서 모델들이 상품화되는 게 굉장히 싫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모델들의 활동을 이해시키는 게 중요했어요. 훌륭한 모델로서 성장이 가능한 신체조건을 갖추었는데도 부모님들을 설득하면 선입견을 갖고서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는 우선 모델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대구에 한 곳 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전문모델교육기관 설립을 통해 사회적 인식과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모델관련 산업이 정말 발전되기를 바랐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구하면 섬유고 패션이 떠오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원정책도 많았던 시절이었고요. 대구 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이 상당히 앞서 있었습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한 획을 긋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는 쇼 연출을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욕심을 버렸다.
그는 세계적인 모델을 발굴하고, 대구의 섬유․패션 산업을 개성 있는 모델들의 무대 활동을 통해 감동이 있는 패션쇼를 연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운도 좋았다. 대구에 내려오자 일거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구섬유패션 중국프로모션에 참여하면서 그는 중국, 상해, 청도, 북경에서 패션쇼를 개최했고, 대구 섬유와 패션을 알리기 위해 지구촌을 누볐다.

“당시만 해도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의 차이가 상당히 났습니다. 모델들의 표현 때문에도 의견의 차이가 심했으니까요. 국내에서는 일반화된 모델들의 노출수위를 두고도 속을 많이 태웠습니다. 힘들어도 제가 패션쇼 무대에 있는 자체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패션쇼는 옷의 디테일이 아니라 이미지를 창의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면서 관객들에게 디자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는 거죠.”

그는 강렬한 이미지 전달을 위해 무대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패션쇼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T 자형 무대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080625_naver4.jpg
◇ ⓒ 데일리안

“디자이너의 컨셉을 전달하기 위해서 모델들한테 옷을 입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대디자인입니다. 그 디자인의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전달되는 이미지는 다 다릅니다. 그래야 공간의 개념이 창의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겁니다.”

그가 말을 하면서 일어서는 횟수가 늘어난다. 냉장고 문을 열고는 생수를 통째로 꺼내들고는 말을 이어간다. 일반화된 연출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그는 말보다는 표현으로 무대를 채웠다.

“기존음악을 의상에 맞추던 시절이었어요. 음악을 모델들의 무대 활동에 맞춰 창작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모델들이 예쁜 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만의 표현력과 개성을 가져야 패션쇼가 브랜드 전체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요.”

그가 연출하는 패션쇼에는 이야기가 있고 연극적인 요소들을 통해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펼쳐진다. 실험적인 패션쇼 연출을 선보인 그의 무대 감각은 패션 쇼 연출문화를 많이 바꿨고,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밀라노, 파리 등지에서 열리는 패션쇼에도 이러한 연출기법들이 도입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갑자기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모델들과 디자이너들한테 연출을 할 때 강조하는 게 무엇인가요?

신 교수는 연출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자료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사진 속 모델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모델들한테는 자기관리, 이미지 관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체형관리, 사생활을 좀 더 규칙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죠. 다양한 표현들과 자기 연출력을 만들라고도 주문을 합니다. 디자이너들과는 이미지를 표현하자고 할 때 의상의 디테일을 강조하자고 하면 좀 힘듭니다. 전체적으로 앙상블을 요구하는 편입니다."

그는 연출을 하던 초창기 시절, 대구의 패션디자인과 졸업 작품을 비롯해 패션쇼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연출을 했다.

“학생들의 작품을 연출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디자이너들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게 저한테는 큰 보람이고 행운이죠.”

-모델들의 생명력이 짧은 편이죠?

감각이 있는 젊은 모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을 그는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자기개발이나 관리가 뒤처지는 모델들이라면 생명력이 짧을 수밖에 없어요. 가수나 연기자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40대를 넘어서도 활동하는 모델들은 많습니다. 문제는 경력이 많거나 톱 모델들의 출연료가 높아서 후배들한테 설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델로 데뷔해서 연예계로 진출하는 모델들도 많습니다. 개발에 뒤쳐지지 않는다면 그 생명력은 평생을 갈 수 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모델들의 꾸준한 자기개발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슈퍼모델 이선진을 데뷔시킨 얘기를 꺼내든다.

“처음 봤을 때 그냥 키가 크고 마르고 수줍은 고등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세계적인 모델이 될 가능성은 많아보였습니다. 결국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성장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는 모델들이 가능성을 열고, 개성을 창조하고, 뛰어난 무대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원동력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교육으로서 그 가능성을 넘어 설 수 있다고 말했다.

080625_naver5.jpg


팝업건수 : 총
오늘하루 열지않기
신입생 1:1문의 재학생 1:1문의